경제

경주에 다 모였다… 이재용·최태원·정의선·구광모, 'AI 황제' 젠슨 황 만나나

 대한민국 재계를 움직이는 거물들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서막을 여는 'CEO 서밋 2025' 참석을 위해 천년고도 경주로 총집결했다. 28일부터 나흘간 '연결과 성장, 그 너머(Bridge, Business, Beyond)'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국내 4대 그룹 총수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그야말로 '역대급' 라인업이 성사됐다. 이는 단순한 연례 포럼 참석을 넘어,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지형 속에서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총수들의 치열한 비즈니스 외교전이 펼쳐질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특히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겸하고 있는 최태원 회장은 29일 개회식에서 환영사를 통해 한국 재계의 위상을 알리고, 같은 날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의 만찬을 통해 한미 경제 협력의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서밋이 단순한 국내 기업인들의 잔치를 넘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로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들이 경주를 찾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문을 연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필두로 맷 가먼 아마존웹서비스(AWS) CEO, 사이먼 칸 구글 아태지역 부사장, 제인 프레이저 시티그룹 CEO, 세계 1위 배터리 기업 CATL의 쩡위췬 회장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글로벌 거물들이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미 본 행사에 앞서 27일 막을 올린 '퓨처테크 포럼'에서는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조선업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한화그룹이 K-방산의 기술력을 뽐내는 등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른 상태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 추형욱 SK이노베이션 사장 등 국내 주요 기업의 핵심 경영진들도 연단에 올라 각 사의 미래 전략과 기술력을 과시하며 글로벌 파트너십을 모색할 예정이다.

 


그중에서도 재계의 시선이 가장 뜨겁게 향하는 곳은 단연 글로벌 AI 열풍의 진원지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와 국내 반도체 투톱인 이재용 회장, 최태원 회장의 만남 성사 여부다. AI 연산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절대 강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만약 세 사람의 회동이 성사된다면, 이는 단순한 HBM 공급 논의를 넘어 차세대 AI 반도체 개발과 기술 협력 등 더 큰 차원의 'AI 동맹'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이번 만남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 향방을 결정지을 중대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반도체만큼이나 뜨거운 또 다른 격전지는 바로 배터리 시장이다. 세계 1위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의 쩡위췬 회장의 방한을 계기로, 국내 기업들과의 미묘한 합종연횡이 점쳐진다. 특히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망 확보가 절실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만남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는 협력이자 동시에 경쟁 관계에 있는 양사 간의 향후 관계를 설정하는 중요한 자리가 될 전망이다. 나아가 K-배터리의 주축인 SK그룹과 LG그룹 총수들과의 만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식적인 행사 외에도 삼성, 현대차, 포스코 등 국내 주요 그룹들은 경주 일대에서 별도의 만찬과 오찬을 주최하며 글로벌 핵심 인사들과의 네트워킹을 위한 치열한 물밑 외교전을 예고하고 있어, 경주의 밤은 비즈니스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1분간의 사이렌이 서울을 삼켰다…광화문 뒤덮은 흐느낌의 정체

 29일 오전 10시 29분, 서울 전역에 울려 퍼진 1분간의 사이렌 소리는 3년 전 그날의 비극을 다시금 일깨웠다.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소리는 광화문광장의 소음을 집어삼킬 만큼 거대했고, 묵념하는 시민들 사이에서는 끝내 참지 못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정부와 유가족이 함께 마련한 기억식 ‘별들과 함께, 진실과 정의로’에는 김민석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와 국내외 유가족, 그리고 비극을 함께 기억하려는 시민들이 모여 슬픔을 나눴다. 참석자들은 애국가를 부르며 눈물을 닦아내거나, 가슴에 단 추모 배지를 매만지며 떠나간 이들을 기렸다. 그날의 충격과 슬픔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기억식에 모인 이들의 가슴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아픔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3년 전 참사로 조카의 아들을 잃은 A씨는 코로나19로 마음껏 놀지 못했던 아이가 친구들과 이태원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며, 이 말도 안 되는 사고의 진실을 밝히는 것만이 아이에게 미안함을 더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참사 전날 바로 그 골목에서 식사를 했다는 원서연 씨는 “이태원 참사는 인재이며, 얼마든지 우리에게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단언하며,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자녀가 희생자들과 비슷한 또래라 남 일 같지 않아 참석했다는 정영희 씨의 이야기처럼, 광장은 직접적인 관계를 떠나 사회적 아픔에 공감하는 이들의 눈물로 채워졌다.같은 시각, 비극의 현장이었던 용산구 이태원동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역시 추모의 발길로 가득 찼다. 사이렌이 울리기 전부터 스님들의 추모 법회가 이어졌고, 벽면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노란 메모지가 빼곡하게 붙어 3년 전의 아픔을 증언했다. 인근 편의점은 ‘추모의 마음을 담아 준비했다’는 문구와 함께 헌화용 국화가 담긴 사탕통을 가게 앞에 내놓아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편의점 직원은 유가족보다 힘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이태원 상인회 역시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고 전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이곳을 찾아 헌화하고 묵념하며, 비극의 기억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참사의 기억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생존자와 목격자들의 삶을 송두리째 붙들고 있었다. 참사 당일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했던 엘리자베스 브락씨는 트라우마 치료에도 호전이 없다며 인터뷰 내내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경찰 4명이 전부였던 현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고 회상하며, 45분간 필사적으로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끝내 그를 살리지 못했던 절망의 순간을 증언했다. 그의 생생한 증언은 이태원 참사가 단순한 사고가 아닌, 막을 수 있었던 사회적 재난이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진실과 정의’를 향한 외침이 왜 멈출 수 없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