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900명 숨죽인 2시간…故 이건희 추모식에서 울려 퍼진 ‘부활’의 의미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의 5주기를 기리는 추모음악회가 지난 20일 경기 용인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고인의 별세를 기리는 단순한 추모식을 넘어, 생전 “문화는 국가의 품격”이라 강조하며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역설했던 그의 깊은 철학을 음악이라는 언어로 되새기는 자리로 마련됐다. ‘예술의 힘으로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주제 아래, 고인이 남긴 예술에 대한 신념과 삶의 궤적을 조용하지만 묵직한 울림으로 풀어내며 참석자들의 가슴에 깊은 잔향을 남겼다. 화려한 의전이나 형식적인 추도사 없이 오직 음악의 힘으로 고인의 정신을 기리는 새로운 방식의 추모는, 그가 한국 사회에 남긴 유산이 비단 경제적 성취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음악회의 포문은 피아니스트 박재홍과 첼리스트 한재민의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 연주로 열렸다. 두 젊은 거장이 빚어내는 섬세하고도 깊이 있는 선율은 인간 내면의 고독과 예술이 주는 순수한 위로를 그려내며 공연장의 공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어 무대에 오른 미국 LA 필하모닉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하며 음악회를 절정으로 이끌었다. 장엄하고 압도적인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과 예술을 통한 정신의 부활이라는 주제를 웅장하게 펼쳐 보였다. 이는 단순한 음악 연주를 넘어, 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이끌었던 리더이자 동시에 예술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키고자 했던 고인의 삶을 음악적으로 재해석한 헌사와도 같았다.

 


이날 콘서트홀에는 유족을 비롯해 인근 지역 주민, 예술 전공 학생, 지역 문화단체 관계자 등 약 900명의 다양한 이들이 객석을 채웠다. 참석자들은 기업 총수를 기리는 엄숙한 자리가 아닌, 한 명의 진정한 예술 애호가를 추억하고 그의 철학을 공유하는 특별한 시간을 함께했다. 현장에 참석한 한 문화계 관계자는 “기업 주관 행사라는 느낌보다는, 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한 사람에게 바치는 진정성 있는 헌정 무대였다”고 소감을 밝히며, 이날 공연이 가진 남다른 의미를 강조했다. 이는 고인이 평생에 걸쳐 보여준 문화 예술에 대한 애정과 지원이 어떻게 사회적 공감대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공연이 막을 내린 후에도 관객들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채 긴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 박수에는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 예술을 통해 세상을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고자 했던 한 인간에 대한 존경과 그의 신념에 대한 깊은 공감이 담겨 있었다. “예술은 인간을 위로하고, 사회를 품격 있게 만든다”는 고인의 메시지는 이날 연주된 음악처럼 공연장 가득 울려 퍼지며, 그가 남긴 철학이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깊은 영감을 줄 것임을 예고했다. 결국 이번 음악회는 한 사람을 기억하는 가장 아름답고 품격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인상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25년 만의 위업' 다저스, 돈다발 아닌 '투혼'으로 일군 기적

 LA 다저스가 연장 11회 혈투 끝에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꺾고 25년 만에 월드시리즈 2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7차전 초반 0-3으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지만, 끈질긴 추격 끝에 5-4로 경기를 뒤집으며 정상에 올랐다. '악의 제국'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다저스는 돈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들만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디 애슬레틱'의 베테랑 기자 켄 로젠탈은 "7차전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라"며 다저스의 우승이 단순한 자금력의 결과가 아님을 강조했다. 은퇴를 앞둔 클레이튼 커쇼 역시 "돈으로는 선수들의 정신력과 투지, 그리고 남들이 하지 않을 일을 기꺼이 하려는 의지를 살 수 없다"고 말하며 팀의 헌신적인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7차전은 다저스 선수들의 투혼이 빛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커리어 처음으로 사흘 휴식 후 등판한 오타니 쇼헤이가 3회 3점 홈런을 맞고 조기 강판됐지만, 동료들이 그의 뒤를 든든히 받쳤다. 6차전 세이브를 기록했던 타일러 글래스노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연투에 나서 2.1이닝을 책임졌고, 블레이크 스넬은 2019년 이후 처음으로 구원 등판하며 힘을 보탰다. 특히 전날 6이닝을 던졌던 시리즈 MVP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구원 등판을 자청해 2.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승리 투수가 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2001년 랜디 존슨 이후 24년 만에 나온 진기록으로, 팀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선수들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가장 극적인 순간은 베테랑 내야수 미겔 로하스의 방망이에서 터져 나왔다. 10월 1일 이후 한 달 넘게 안타가 없던 로하스는 9회 극적인 동점 홈런을 쏘아 올리며 팀을 위기에서 구했다. 수비에서도 9회 말 1사 만루 상황에서 어려운 타구를 처리하며 실점을 막아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주전 유격수 자리를 무키 베츠에게 내주고도 묵묵히 팀을 도왔던 그의 헌신이 마침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맥스 먼시는 "출전 기회가 없을 때도 항상 팀을 도울 방법을 찾던 선수"라며 "그의 동점 홈런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하며 동료의 활약에 감격했다.다저스의 우승은 단순히 거액의 스타 선수들만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었다. 트레이드로 영입한 구원투수 윌 클라인, 마이너리그 자유계약 선수 출신 맥스 먼시, 저비용으로 계약한 앤디 파헤스, 하위 라운드 지명자인 저스틴 로블레스키와 에밋 시한 등 이름값은 낮지만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해준 선수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로젠탈은 "다른 팀들이 다저스처럼 돈을 쓸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들의 열정과 끈기, 하나의 목표를 향해 싸운 방식은 분명 본받을 수 있다"며 "다저스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돈이 아닌 그들의 투지"라고 평가했다. 결국 다저스는 '돈으로 우승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며 왕조의 서막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