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알고도 방치했다…'전승 교육 0건' 보고서 받고도 눈감은 국가유산청

 우리 전통문화의 맥을 잇는 무형문화유산 전승 체계에 심각한 경고등이 켜졌다. 평생을 바쳐 기술과 예능을 지켜온 보유자들이 고령과 건강 악화로 사실상 전승 활동을 멈춘 상황이지만,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국가유산청은 형식적인 점검으로 일관하며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현행법은 국가가 지정한 보유자들이 매년 1회 이상 공개행사를 열고 전수 교육을 하도록 지원하고 관리할 책임을 명시하고 있지만, 국가유산청이 직접 작성한 보고서에서조차 이러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음이 명백히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행정의 공백을 넘어,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을 이어온 소중한 전통의 숨통을 국가 스스로 끊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실태는 처참한 수준이다. 국가유산청의 '2024년 공개행사 점검사업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93세의 A 보유자는 건강 문제로 지난해 정기 공연 무대에 올랐지만 정작 자신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다. 현장을 점검한 전문가조차 "실제 연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노쇠해 명예 보유자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낼 정도였다. 94세의 B 보유자는 스스로 실연이 어렵다고 판단해 행사 경비를 줄여 신청했고, 보고서에는 "초고령으로 전통 제작 기능 실연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담겼다. 심지어 그는 최근 2년간 전승 교육 실적을 단 한 건도 제출하지 않았다. 91세의 C 보유자 역시 행사에 참석만 했을 뿐 어떠한 실연도 하지 못했으며, 해당 단체는 2년째 교육 실적 보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현장에서는 전승이 불가능하다는 신호가 명확하지만, 관리 기관은 이를 인지하고도 아무런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은 셈이다.

 


이러한 문제는 일부의 사례가 아닌, 무형유산 전승 현장 전체를 위협하는 구조적 위기로 번지고 있다. 올해 기준 무형유산 보유자의 평균 연령은 75.8세에 달하며, 이는 3년 전인 2021년의 73.9세보다 약 2세나 많아진 수치다. 전체 보유자 172명 중 70대 이상이 133명으로 77%를 넘어서고, 이 중 90대 초고령 보유자도 열두 명에 이른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닌 상황에서, 이미 여섯 종목은 보유자가 단 한 명도 남지 않아 전승이 완전히 단절되었고, 서른네 종목은 단 한 명의 보유자에게 모든 운명이 달린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다. 한 세대가 저물기 전에 다음 세대로 기술과 정신을 넘겨주어야 할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국가유산청이 고령화된 전승 환경의 현실을 인정하고, 이에 맞는 새로운 관리 체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평생을 전통 보존에 헌신한 보유자들에게는 '명예 보유자' 지정과 같은 합당한 예우를 통해 존중을 표하되, 실제 전승은 역량 있는 차세대 전승자들이 책임지고 이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단순히 실적 보고서를 취합하고 현장을 참관하는 수준의 소극적 관리를 넘어, 각 종목의 특성과 전승자의 건강 상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다음 세대로의 연결을 적극적으로 주선하는 '전승 코디네이터' 역할에 나서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살아있는 역사'가 우리 시대에 박제된 기록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무용수 병원비 1000만원 ‘쌩돈’…정부는 ‘안전 연구’만 하고 있었다

 반복되는 공연장 안전사고에도 불구하고 예술인들이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충격적인 실태가 드러났다. 화려한 무대 뒤에서 예술인들은 추락과 낙하 등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지만,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지적된 바에 따르면, 예술인 산재보험 가입률은 고작 2%에 불과하다. 이는 사고 발생 시 100명 중 98명의 예술인이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스스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올해 세종의전당에서 추락한 무용수는 가입된 보험이 없어 1000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전액 자비로 부담했으며, 과거 400kg의 무대장치에 부딪혀 하반신이 마비된 성악가는 수억 원의 치료비를 감당하다 끝내 세상을 떠나는 비극적인 일까지 발생했다.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고가 단순히 운이 나빠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만연한 안전불감증과 정부의 관리 부실이 낳은 예고된 인재라는 점이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은 최근 5년간 약 23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공연장 안전기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구체적인 기준까지 마련했다. 하지만 정작 공연 현장에는 이를 관리하고 감독할 전담 안전관리자가 단 한 명도 배치되지 않아, 애써 만든 기준이 사문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사실상 정부가 수백억 원의 혈세를 들여 ‘연구를 위한 연구’만 진행했을 뿐, 현장의 실질적인 안전 개선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정부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대응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도 지적됐다. KTL은 27억 원을 들인 별도 연구를 통해, 화재 발생 시 화염과 유독가스의 확산을 막는 핵심 설비인 방화막의 내압성능을 국제표준 수준인 450파스칼(Pa)로 설정해야 한다는 기준을 명시했다. 이는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미 의무화된 ‘생명 기준’이다. 그러나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중요한 안전 기준을 실제 규격에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만약 대형 공연장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부실한 방화막으로 인해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을 정부 스스로 방치하고 있었던 셈이다.이에 국회에서는 국민의 안전과 예술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부의 즉각적인 행동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공연장마다 전담 안전관리자를 의무적으로 배치하고, 모든 공연 관계자를 대상으로 정기적인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등 종합적인 안전관리 체계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러한 지적에 “행정적 시선이 아닌 국민의 생명을 중심에 두고 예술인의 안전을 절대적으로 보호하겠다”며 공연장 안전 실태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을 약속했다. 하지만 노동부의 ‘전 국민 산재보험 의무화’라는 제도 개선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문체부 차원의 별도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에 그쳐, 반복되는 비극의 고리를 끊어낼 실질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