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트럼프의 3500억 달러 요구에… 원화가치 ‘와르르’, 1450원대 공포 현실로

 추석 연휴 동안 국내 금융시장이 휴장한 사이, 원화 가치가 해외 시장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연휴 직전 1400원대 초반에서 거래되던 원·달러 환율은 연휴 기간 내내 뉴욕, 싱가포르 등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한때 1423원선을 넘어서는 등 1420원대에 안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연휴 직전 종가와 비교하면 무려 14원 이상 급등한 수치다. 국내 외환시장이 다시 문을 여는 연휴 직후, 역외 시장의 환율 상승분이 일시에 반영되면서 환율이 폭등할 수 있다는 ‘블랙 먼데이’의 공포가 시장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환율 상승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미국과의 관세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불확실성이 지목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500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대미 투자를 ‘선불’ 개념으로 요구하고 나선 것이 원화 가치에 치명타를 안겼다. 여기에 비상 상황에 대비한 안전판 역할을 할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마저 난항을 겪으면서 원화 약세 우려는 더욱 증폭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다른 통화에 비해 유독 원화 가치의 하락 폭이 두드러지는 현상의 핵심에 바로 이 관세협상 리스크가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하며, 역외 시장의 불안한 흐름이 연휴 이후 국내 시장에서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정치 지형 변화에 따라 급격히 가치가 떨어진 엔화 역시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또 다른 복병으로 떠올랐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원화와 엔화는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동조화 현상이 뚜렷한데, 대규모 양적완화를 공언한 다카이치 사나에가 차기 총리로 유력해지면서 엔·달러 환율이 7개월 만에 최고치인 152엔대까지 치솟았다. 이는 고스란히 원화 가치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6일간의 긴 연휴를 마치고 외환시장이 다시 열렸던 지난 설 직후의 아찔한 기억을 소환한다. 당시에도 연휴 기간 누적된 악재가 한꺼번에 반영되며 환율이 개장과 동시에 15원 가까이 폭등해 장중 1450원선을 위협하는 패닉 장세가 연출된 바 있다.

 

설상가상으로 과거 환율 급등의 방파제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국민연금 환헤지’라는 비상 카드마저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그동안 외환당국은 환율이 과도하게 오를 때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해외자산의 환헤지 비율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달러를 공급하며 환율을 방어해왔다. 하지만 미국이 지난 6월 환율보고서에서 이를 직접 언급하고, 최근 한미 환율 합의문에도 ‘정부투자기관의 해외투자는 경쟁적 목적의 환율을 목표로 해선 안 된다’는 문구가 포함되는 등 미국의 감시망이 한층 촘촘해졌다. 사실상 환율 방어를 위한 당국의 손발이 묶인 셈이어서, 연휴 이후 닥쳐올 환율 급등 파고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말 한마디에 '출렁'…비트코인, G2 정상회담 앞두고 '숨죽인 관망세'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전쟁 긴장감이 다소 완화될 기미를 보이자, 대표적인 가상자산인 비트코인이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한때 10만 4천 달러 선까지 밀려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비트코인은,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피어오르면서 11만 4천 달러 선을 중심으로 횡보하며 좀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섣부른 판단 대신 이달 말로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눌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시장의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G2라 불리는 두 강대국 정상의 만남이 향후 가상자산 시장의 향방을 결정지을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신중한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이번 비트코인 가격의 급등락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 하나하나에 시장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대규모 관세 인상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자, 가상자산 시장은 물론 뉴욕 증시까지 일제히 급락하며 글로벌 금융 시장 전체가 크게 휘청였다. 하지만 시장의 충격이 예상보다 크다고 판단했는지, 미국 행정부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과 예정대로 만날 것이라고 밝히며 갈등 봉합의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트럼프 대통령 본인 역시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국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유화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요동치던 시장을 진정시켰다.비트코인이 주춤하는 사이, 알트코인들은 저마다의 호재를 발판 삼아 상승세를 타는 모습이다. '가상자산의 왕' 비트코인이 숨을 고르는 동안 생긴 시장의 빈틈을 다른 코인들이 파고들며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더리움은 전일 대비 1.90% 상승한 4,220달러 선에서 거래되며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고, 리플(XRP) 역시 3.11% 오르며 2.60달러를 기록하는 등 뚜렷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는 비트코인에 쏠렸던 투자 심리가 점차 다른 유망한 알트코인으로 분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국내 원화마켓에서는 비트코인이 1억 7,100만 원 선에서 거래되며 해외 시세보다 약 4.65% 비싸게 거래되는 '김치 프리미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어, 국내 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짐작게 한다.결론적으로 현재 가상자산 시장은 미중 정상회담이라는 거대한 이벤트를 앞두고 폭풍전야의 고요함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비트코인은 당분간 11만 달러 선을 중심으로 지루한 눈치싸움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들은 이번 회담에서 양국이 극적인 무역 합의를 이끌어내며 시장에 훈풍을 불어올 것인지, 아니면 또다시 갈등의 골만 확인하며 찬물을 끼얹을 것인지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지금, 섣부른 '몰빵' 투자보다는 시장의 흐름을 차분히 지켜보며 다음 파도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중 두 거인의 어깨 위에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의 운명이 걸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