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먹방'부터 '꼰대'까지…579돌 한글날, 세계를 물들인 한글의 빛과 그림자

 "팅갈 민따 마앞 트루스 등으린 락얏 아파 수샇냐(사과하고 국민 말 좀 듣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냐)"

 

한글로 쓰였지만, 한국인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 문장은 인도네시아 네티즌들이 정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한글 암호'다. 제579돌 한글날을 맞아, 지구촌 곳곳에서 때로는 저항의 도구로, 때로는 문화 보존의 방주로, 때로는 가장 '힙한' 신조어로 사용되는 한글의 놀라운 여정을 조명한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는 국회의원 특혜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화되자, 네티즌들이 정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글은 표음문자이면서도 초성·중성·종성 체계로 외국어 발음을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고, 라틴 알파벳과 다른 독특한 모양 덕분에 자동 검열을 피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글을 이용해 소셜미디어에서 자유롭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글은 소수 민족의 언어를 지키는 '방주' 역할도 해냈다.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은 고유 언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2009년 한글을 공식 문자로 채택했다. 한글이 자신들의 언어 발음과 매우 유사하게 표기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제 찌아찌아족은 한글로 된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거리 곳곳에서 한글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미국 뉴욕타임스(NYT)에서도 민족 정체성 보존의 성공 사례로 주목한 바 있다. 한글 단어는 그 자체로 세계적인 신조어가 되기도 한다. '먹방(Mukbang)'은 이미 세계 공용어가 됐고, K팝 팬들은 '오빠(Oppa)', '막내(Maknae)'처럼 미묘한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우리말을 그대로 사용한다. 일본의 젊은 세대는 '진짜(ジンチャ)'를 '정말'이라는 뜻의 신조어처럼 활용한다.

 

 

물론 빛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 BBC는 '꼰대(Kkondae)'를 '오늘의 단어'로 선정하며 한국의 경직된 위계 문화를 조명했고, NYT는 '갑질(Gapjil)', '재벌(Chaebol)' 같은 단어를 통해 한국 사회의 그늘을 짚기도 했다.

 

차재은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한글은 '지혜로운 사람이면 나절,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이면 깨우친다'고 할 만큼 배우기 쉬운 과학적인 문자"라며, "한류의 영향력, 한국의 민주적 시위 문화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한글의 세계적 확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신 폰에도 신라 천 년의 역사를"…경주 APEC 기념 굿즈 화제

 대통령실이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경주 개최를 앞두고,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디지털 굿즈 21종을 공개했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2005년 부산 대회 이후 20년 만에 대한민국이 의장국을 맡아 주관한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 1989년 호주 캔버라에서 12개국 각료회의로 시작된 APEC은 1993년 정상회의로 격상된 이래, 현재는 21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의 경제 협력체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디지털 굿즈 배포는 반가운 국내 개최 소식을 널리 알리고 국민적 관심을 높이려는 취지로 풀이된다.대한민국은 2025년 APEC 의장국으로서 '연결(Connect), 혁신(Innovate), 번영(Prosper)'이라는 세 가지 핵심 의제를 설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APEC이 장기 목표로 삼고 있는 '푸트라자야 비전 2040'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회원국 정상들과 심도 있게 논의할 계획이다. 이번에 공개된 디지털 굿즈는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한국이 주도할 APEC의 비전과 외교적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아내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특히 정상 외교 복원을 알리고 국제 사회에서 높아진 대한민국의 위상을 상징하는 동시에, 20년 만에 의장국으로 복귀하는 역사적 의미를 국민과 함께 기념하고자 제작되었다.이번 디지털 굿즈는 총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각각의 상징성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첫째, 'APEC 2025 공식 엠블럼'과 '보자기'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은 21개 회원국의 다채로운 개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APEC의 협력 정신을 표현했다. 각기 다른 천 조각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보자기가 완성되듯,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공동 번영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둘째, 'UN 순방' 굿즈는 제80차 유엔 총회 연설 등을 통해 국제 외교 무대로 화려하게 복귀한 대한민국의 자신감을 담았다. 마지막으로 '문화유산' 굿즈는 신라 천 년의 고도인 개최 도시 경주의 정체성을 부각했다. 첨성대, 석굴암 등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을 현대적인 디지털 아트로 재해석하여 한국 고유의 품격과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대통령실은 이번 디지털 굿즈가 단순한 온라인 홍보물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지역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미와 경주의 특색을 담은 굿즈가 국내외 사용자들에게 자연스럽게 경주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관광으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것이다. 안드로이드 및 애플워치 페이스, 스마트폰 배경화면 등 총 21종으로 구성된 이번 굿즈는 대통령실 공식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대통령실은 20년 만에 주최하는 APEC 정상회의가 단순한 외교 행사를 넘어 실용적인 성과를 내는 무대가 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