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침팬지의 어머니, 마지막 희망의 메시지만 남기고 떠나다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환경 운동의 상징, 제인 구달이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제인 구달 연구소는 그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연설 투어를 이어가던 중 자연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매년 300일 이상 전 세계를 누비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하던 그였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소명을 다한 셈이다. 그의 타계 소식에 전 세계는 과학계의 혁명가이자 지칠 줄 몰랐던 행동가를 잃었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타잔'과 '닥터 두리틀'을 읽으며 아프리카의 동물을 꿈꿨던 영국인 소녀는, 한 세기를 풍미한 위대한 유산을 남기고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의 시작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비서로 일하던 구달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1957년, 친구의 초대로 방문한 케냐에서였다. 그곳에서 저명한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를 만난 것은 단순한 우연을 넘어선 운명이었다. 리키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아 선입견이 없던 구달의 순수한 열정과 날카로운 관찰력에 주목했다. 그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야생 침팬지 연구의 적임자로 구달을 지목했고, 이는 당시 학계의 통념을 깨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그렇게 26세의 구달은 아무런 배경도 없이 오직 동물에 대한 사랑 하나만으로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의 밀림으로 향했다.

 


곰베에서 시작된 그의 연구는 곧 인류의 오만함을 뒤흔드는 혁명적인 발견으로 이어졌다. 구달은 침팬지들이 단순히 동물이 아니라 각기 다른 개성과 감정을 가진 존재임을 밝혀냈고, 그들에게 번호 대신 이름을 붙여주며 교감했다. 특히 흰개미를 사냥하기 위해 풀줄기를 도구로 사용하는 모습을 포착한 것은 과학계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으로 여겨졌던 '도구 사용'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의 발견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다시 던지게 했고, 포획된 동물이 아닌 야생 개체를 장기간 관찰하는 그의 연구 방식은 동물행동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순한 학문적 성과에만 머무르지 않았던 그는 연구 과정에서 침팬지의 서식지가 무자비하게 파괴되는 현실을 목격하고 환경 운동가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1977년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설립한 이후, 그는 연구실을 떠나 전 세계를 무대로 삼았다. 강연과 캠페인을 통해 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특히 미래 세대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희망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늘 말했던 그는, 지구가 스스로 회복할 힘을 가지고 있음을 믿었고, 우리 각자가 남기는 '생태학적 발자국'을 최소화할 것을 호소했다. 침팬지의 어머니에서 인류의 스승으로 거듭난 그는, 마지막까지 행동하는 희망의 증거 그 자체였다.

 

환자인 줄 알았더니…간호사 가장 괴롭히는 건 '선배'와 '의사'였다

 의료 현장의 최전선에서 국민 건강을 수호하는 간호사들이 정작 자신들의 인권은 보호받지 못하는 심각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사실이 통계로 드러났다. 폭언과 폭행, 그리고 위계질서를 앞세운 '직장 내 괴롭힘'이 일상처럼 벌어지는 현실 속에서, 대한간호협회가 마침내 간호사들의 무너진 마음을 치유하고 인권을 바로 세우기 위한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간호협회는 21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간호인력지원센터에서 '간호사 심리상담 전문가단' 발대식을 열고, 인권침해 피해를 본 간호사들을 위한 전문적인 심리상담 지원 체계를 공식 출범시켰다. 이는 더 이상 간호사 개인의 희생과 인내에만 의존하지 않고, 협회 차원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보호망을 구축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이번 전문가단 출범의 배경에는 충격적인 실태조사 결과가 자리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5년간 보건의료인력을 대상으로 접수한 인권침해 상담 건수는 무려 6,000건을 넘어섰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인 57.9%(3,487건)가 간호사의 피해 사례였던 것으로 집계됐다. 상황의 심각성은 간호협회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조사에 참여한 간호사 중 절반에 가까운 50.8%가 최근 1년 사이에 인권침해를 직접 경험했다고 응답했으며, 피해를 경험한 간호사 10명 중 7명 이상(71.8%)은 신고나 항의 등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여야만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간호사들이 인권침해를 당해도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의료 현장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그렇다면 '백의의 천사'로 불리는 간호사들을 가장 괴롭히는 가해자는 누구일까. 놀랍게도 환자나 보호자가 아닌, 함께 일하는 동료 의료인이 가장 큰 가해자로 지목됐다. 인권침해 가해자를 묻는 질문(복수응답)에 '선임 간호사'가 53.3%로 가장 높았고, '의사'가 52.8%로 바로 뒤를 이었다. '환자 및 보호자'는 43.0%로 그 다음이었다. 간호사들은 주로 '폭언'(81.0%)과 '직장 내 괴롭힘 및 갑질'(69.3%)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이는 의료 현장의 고질적인 위계 문화와 일부 의료인의 왜곡된 특권 의식이 간호사들의 인권을 얼마나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환자를 돌봐야 할 동료가 오히려 가장 큰 고통의 근원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이에 간호협회는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 심리상담 전문가단 운영과 함께 정부를 향한 제도 개선 요구에도 나섰다. 협회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인권침해 신고부터 조치까지 전 과정을 표준화하고 ▲신고자에 대한 철저한 보호와 2차 가해 금지 조항을 마련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 신경림 간호협회장은 "간호사가 존중받는 환경에서 일할 때 비로소 국민의 생명과 건강도 지켜질 수 있다"고 강조하며, "간호사의 마음이 건강해야 환자의 생명이 안전하다는 신념으로, 이번 전문가단 출범이 간호사의 존엄과 회복을 상징하는 희망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