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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밭에 흩뿌려진 붉은 동백꽃의 비밀... 제주4·3, 비극을 넘어선 '화해와 상생'의 메시지

 제주도는 그 이름만으로도 푸른 바다와 울창한 숲, 청명한 하늘이 그려지는 아름다운 섬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이라는 자연과학 분야 3관왕의 영예를 안은 이곳은 자연의 신비가 살아 숨 쉬는 낙원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찬란한 아름다움 뒤에는 한과 눈물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의 가장 뼈아픈 비극 중 하나인 제주4·3의 역사가 깊이 새겨져 있다. 지난 12일, 그 아픔의 현장인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평화를 동시에 마주했다. 제주시 봉개동에 자리 잡은 이 공원은 단순한 추모 공간을 넘어, 평화와 인권의 숭고한 가치를 상징하는 장소다.

 

제주4·3평화공원은 제주4·3으로 인해 무고하게 희생된 수많은 민간인들의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더 나아가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염원을 담고 있다.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제주4·3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이자,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져,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의 무장봉기로 비화했다. 이후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 그리고 토벌대의 무자비한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희생을 겪어야 했다. 역사학자들은 이 비극으로 인해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이 넘는 2만 5천에서 3만 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추정한다. 반세기가 넘도록 입 밖에 내놓을 수 없었던, 이념적 누명의 굴레 아래 지하에 갇혀 있어야만 했던 제주4·3의 상처와 고통은 남겨진 이들에게 대물림되며 깊은 한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은 결코 영원히 가둘 수 없는 법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강요된 침묵은 깨지기 시작했고 제주4·3의 진실은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났다. 마침내 2003년 10월 15일, 제주4·3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으로 공식 규정되었고, 그해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도민과 4·3희생자 유족들에게 국가 권력의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는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들과 고통받았던 유족들에게 뒤늦게나마 깊은 위로가 되었다. 이어서 2005년 1월 17일에는 제주도가 '세계평화의섬'으로 선포되었고, 2014년에는 '4·3희생자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공식 지정되며, 제주4·3은 비로소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제주4·3평화기념관은 그 외관부터가 인상적이다. 제주4·3의 역사적 진실을 담는 '그릇'을 모티브로 한 특이한 건물 모양은, 오랜 시간 금기시되었던 진실을 이제는 온전히 담아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상징한다. 기념관 내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제주4·3의 원인, 전개 과정, 결과, 그리고 진상조사 단계까지를 1부에서 5부로 나누어 상세하게 전시하고 있어, 방문객들이 이 비극적인 역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전시실에 걸린 당시 불바다가 된 중산간 마을의 처참한 사진들은 그날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증언하며, 관람객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또한, 제주4·3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했던 김익렬 연대장, 예비검속자 학살을 거부했던 문형순 경찰서장 등 당시 의로운 행동을 했던 인물들의 사진은 어둠 속에서도 빛났던 인간애를 보여주며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기념관 전시실 한편에 놓인 '제주4·3 백비(白碑)'는 그 자체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언젠가 이 비(碑)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는 문구처럼, 백비는 아직 이름을 온전히 갖지 못한 제주4·3의 비극을 상징한다. 그동안 '봉기', '폭동', '사태', '사건', '항쟁'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던 제주4·3은, 분단의 아픔을 넘어 남과 북이 통일되는 그날, 진정한 의미의 이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이 백비는 역사의 진실이 완전히 규명되고 모든 이념적 갈등이 해소될 때까지, 우리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숙제를 던져준다.

 

참담했던 제주4·3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기념관을 나서면, 평화공원 한쪽에 세워진 붉은 동백꽃 조형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동백꽃은 제주4·3을 상징하는 꽃이다. 한겨울 눈밭에서도 강렬한 붉은 꽃잎을 피워내는 동백은,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제주도민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희생을 의미한다. 통꽃으로 툭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하얀 눈밭에 흩뿌려진 붉은 피를 연상시키며, 참혹했던 그날의 비극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동시에 동백은 화해와 상생을 향한 제주4·3 정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공원 화단에 예쁘게 핀 몇 송이 상사화(相思花) 또한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해 그리워한다는 상사화의 전설처럼,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희생자들의 넋이 그리운 가족들을 생각하는 듯하여 마음이 더욱 아려온다.

 

제주4·3평화공원은 단순한 역사 교육의 장을 넘어, 자주독립과 통일된 나라를 열망했던 우리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깊이 깨닫게 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은 과거의 상처를 직시하고,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통해 미래의 평화를 만들어갈 책임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제주4·3평화공원은 비극을 넘어선 화해와 상생의 메시지를 전하며,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

 

국민 혈세로 받은 '424만원' 보너스…"마음 무겁고 송구하다"며 어려운 이웃에게 보낸 의원

 올해도 어김없이 국회의원들의 통장에는 두둑한 명절 휴가비가 입금됐다. 추석을 앞두고 의원 1인당 지급된 금액은 424만 7,940원.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 '명절 상여금'에 한 국회의원이 무거운 마음을 드러내며 또다시 전액 기부를 약속했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자신의 통장에 찍힌 숫자를 공개하며 "마음이 무겁고 송구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그가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으로 받는 돈에 불편함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추석과 올해 설에도 그는 명절 휴가비를 받으며 느낀 불편한 심경을 토로하고 이를 이웃과 나누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의 혈세로 지급되는 보너스를 마냥 기쁘게 받을 수만은 없는 그의 고백은, 반복되는 정치권의 특권 논란 속에서 다시 한번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김 의원의 이러한 불편함은 그가 국회에 입성한 초선 시절부터 시작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대한민국을 휩쓸던 참담한 시기, 수십 명의 자영업자들이 극심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현실을 눈앞에서 목도하면서, 세금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일 자체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고 그는 고백한다. 모두가 고통받는 현실 속에서 안정적인 세비를 받는 것에서 오는 미안함과 책임감은, 그로 하여금 의원이 된 첫해부터 세비 일부를 꾸준히 기부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국민의 혈세'를 외치며 예산을 심사하는 장본인으로서, 정작 자신의 특권에는 침묵할 수 없다는 양심의 목소리였던 셈이다.그의 비판은 단순히 개인적인 소회를 넘어 대한민국 정치권 전체의 부끄러운 민낯을 향한다. 국회의원들이 예산안을 심사하며 '국민 혈세'의 소중함을 부르짖지만, 정작 그 돈이 미래 세대의 주머니를 털어 만드는 '빚 폭탄'이라는 사실에는 눈감은 채 마구잡이로 퍼주기식 정책을 남발하는 현실에 그는 절망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사적인 이익을 위해 출판기념회를 열고, 자녀의 결혼 청첩장에 계좌번호는 물론 카드 결제 링크까지 버젓이 넣는 일부 정치인들의 뻔뻔한 행태를 꼬집으며,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민생'을 외치고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냐고 강하게 반문했다.결국 정치는 '책임'과 '염치'의 문제라고 그는 강조한다. 정치인 스스로가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일을 줄이고,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나누는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국회도, 대한민국 정치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명절 휴가비 역시 전액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놓으며 "그래도 내 삶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덧붙인 그의 말은, 많은 정치인에게 울림을 준다. 국회의원 명절 휴가비는 일반 공무원 수당 규정에 따라 월 봉급액의 60%가 지급되며 지난 10년간 약 10%가 올랐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이러한 특권과 관행을 버리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만이 대한민국 정치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해법임을 그의 조용한 실천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