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디지털 강국 스웨덴도 포기 못한 '현금'... 한국만 서두르는 이유는?

 한국에서 '현금 없는 사회'가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다. 일상 상거래는 물론 공공 교통수단에서조차 현금 결제가 차단되는 '현금 없는 버스' 정책이 확산되고 있다. 이를 단순히 디지털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만 볼 수 있을까?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삶의 다양성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이 보장되는 사회가 더욱 자유로운 사회"라고 강조한다.

 

지방정부들은 현금 없는 체계를 '글로벌 트렌드'로 포장하며 추진해왔다. 영국,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등 여러 국가에서도 현금 없는 버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독일 베를린도 지난해 버스 현금 승차를 금지했다. 호주에서는 현금 운송 업체의 파산 위기를 막기 위해 여러 회사들이 거액을 투입해 현금 유통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의 절반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는 현금 사용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현금은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상품과 서비스의 보편적 이용권을 보장하고, 자본과 국가권력의 감시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국은행법'이 현금의 무제한 통용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위반했을 때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한국은행은 현금 사용 선택권을 홍보하며 그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화폐 유통 시스템 관계기관 협의회에서는 현금 접근성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회에서도 2019년과 2022년에 현금 결제 선택권을 보장하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해외에서는 현금 사용 선택권 보장을 위한 법적, 사회적 장치가 더욱 구체화되어 있다. 미국의 뉴저지, 뉴욕 등 일부 주는 매장에서 현금 수취 거부를 금지하는 법률을 시행 중이다. 덴마크는 2015년 지급카드법에 현금 결제 선택권을 명시했고, 노르웨이는 금융계약법 개정을 통해 현금 결제 거부 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했다.

 

디지털 결제가 보편화된 스웨덴에서도 2015년 최고행정법원은 공공의료기관이 현금 결제를 수용해야 한다고 판결했으며, 정부 차원에서도 은행의 현금 서비스와 ATM 설치를 의무화했다. 프랑스는 판매점이 현금, 카드, 어음 중 두 가지 이상을 결제 수단으로 의무 선택하도록 하고, 현금 수령 거부 시 벌금을 부과한다.

 

네덜란드는 법적 강제는 없지만, 사회적 합의 기구를 통해 현금 수취 거부나 현금 사용자 차별을 금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심지어 디지털 결제가 일상화된 중국에서도 노년층과 외국인을 위해 현금 결제 환경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현금 접근성 보장을 위한 실질적 조치도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과 호주는 대형마트, 식료품점 등에서 현금 인출이 가능하며, 영국은 물품 구매 없이도 현금을 인출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일랜드는 은행이 수익성만을 이유로 ATM을 함부로 폐쇄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스페인의 'Plataforma Denaria', 프랑스의 'CashEssentials', 스웨덴의 '현금 반란' 등 시민단체들이 현금 사용권을 옹호하고 있다. 이들은 디지털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특히 노년층과 농촌 거주자 등 디지털 소외계층의 권리를 대변하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의 부작용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이미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국 사회도 시민들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현금 사용을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인식하고, 이를 법률적으로 보장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모두에게 열린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더위는 참겠는데, 전기요금 못 참아! '50년 전 유물' 누진제, 이제는 보내줄 때?

 기록적인 폭염이 휩쓴 7월, 전국 곳곳에서 '전기요금 폭탄'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30년 만에 가장 뜨거웠던 지난달의 여파로 가계 전기요금 부담이 극심해지면서, 50년 전 만들어진 현행 전기요금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십만 원에 달하는 '전기요금 고지서' 인증 글이 잇따른다. 두 아이를 키우는 한 이용자는 에어컨 3대를 가동한 결과 1138kWh 사용에 36만7430원이 청구되었다며 "하루 1만2천 원으로 폭염을 이겨낸 셈"이라고 토로했다. 1인 가구 역시 457kWh 사용에 9만2440원 요금을 받아들며 "혼자 사는데 이 정도냐"는 하소연이 이어졌다.이러한 '요금 쇼크'는 단순히 에어컨 사용량 증가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7월은 전국 평균 기온 27.1도로 1973년 이래 두 번째로 뜨거웠고, 폭염일수와 열대야 일수 모두 역대급을 기록하며 전력 사용을 부추겼다. 이로 인해 전력 수요는 85.033GW로 7월 기준 역대 최대치를 경신, 사실상 8월 수준에 육박했다.근본적인 문제는 1974년 오일쇼크 당시 에너지 절약을 목적으로 도입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에 있다. 사용량에 따라 요금이 급증하는 구조는 전력 절약 유도라는 본래 취지를 넘어, 현대 가정의 필수 전력 사용을 '죄악'시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특히 여름철 누진 구간이 일부 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냉방 필수 시대에 실제 가정의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완화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2016년 이후 가정용 전력 사용량이 20% 이상 증가했음에도 누진제 개편은 8년간 멈춰있다.에너지경제연구원 정연제 연구위원은 "주택용 전기요금에서 기본요금 비중이 지나치게 낮고, 전력량요금 비중이 과도하다"며 "형평성을 위해 누진배율을 축소하는 등 시대에 맞는 요금 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기후 변화와 현대인의 생활 방식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전기요금 체계가 더 이상 가계 부담을 가중시키고 국민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