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모아

법보다 위에 있나? 의대생 복귀에 쏟아지는 '특혜 논란'과 '형평성 문제'

 의대생들이 정부의 의대 2천명 증원 정책에 반발해 시작한 '동맹 휴학'을 1년 5개월 만에 끝내고 복귀 의사를 밝혔으나, 이에 대한 여론은 대체로 차갑다. 의정 갈등과 의료 공백의 장기화 속에서 갈등 봉합의 물꼬를 텄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많은 시민들은 의대생들이 그간 초래된 사회적 혼란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이 정상화 대책만 요구하는 태도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특히 비의대생들 사이에서는 교육부가 검토 중인 '학사일정 유연화'가 "의대생에게만 주어지는 특혜"라는 비판이 거세다. 직장인 이모(33)씨는 "의대생들도 의사단체의 한 축이었으므로 학생 신분에 걸맞은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의료서비스 대상자인 시민과 의료서비스 제공자인 의사집단 간 신뢰가 없다면 어떻게 의료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대학생 정모(25)씨도 "본인의 이득을 챙기려고 마음대로 수업을 거부했다면 적어도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죄송하다고 사과할 필요가 있다"며 "유급 위기에 처하니 슬슬 복귀하겠다는 것도 이기적인 행위"라고 꼬집었다.

 

교육부의 학사일정 유연화 검토에 대해서는 비의대생을 중심으로 "명백한 특혜"라는 목소리가 높다. 신학대학원생 오요셉(24)씨는 "의대생만을 위한 일정 연장과 제적 복구 조치 등이 형평성에 어긋나 보인다"며 "비의대생이었다면 이런 '제자리 찾기'가 가능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미대생 김성훈(23)씨 역시 "특혜를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학사 일정 정상화를 요구하는 것이 매우 불편했다"고 밝혔다.

 


환자·시민단체도 복귀에 따른 특혜는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조건 없이 복귀해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는 복귀한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특혜성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경실련도 "특혜성 학사 유연화나 수련시간 단축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대규모 유급에 따른 교육현장의 부담이 높은 만큼 책임론에 연연하기보다 의정 갈등을 해소하는 데 대화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회학부 대학생 유동기(25)씨는 "의료 공백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의대생 복귀는 필수적"이라며 "당장 의료 인력 공백으로 고통받는 국민 입장에서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오주환 교수는 "지금 필요한 것은 관용의 시간"이라며 "이제는 국민들도 의대생들이 제기했던 문제들에 대해 하나씩 귀 기울여주시고, 거버넌스 체계를 토대로 누적된 문제를 함께 체계적·장기적이고 긴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이롭다” 빌 게이츠가 홀린 한국의 힘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이자 빌앤멜린다 게이츠재단 이사장인 빌 게이츠가 21일 하루 동안 한국 정치·경제·보건 주요 인사들을 연달아 만나며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3년 만에 이뤄진 이번 방한에서 그는 이재명 대통령, 우원식 국회의장, 김민석 국무총리를 차례로 예방하고, 국내 언론과 간담회를 갖는 등 광범위한 ‘광폭 행보’를 펼쳤다. 방한의 핵심 목적은 한국과의 글로벌 보건 협력 확대였지만, 여기에 더해 인공지능(AI), 소형모듈원자로(SMR) 같은 첨단 기술과 미래 에너지 분야에 대한 논의도 병행됐다. 특히 게이츠 이사장은 저소득 국가 백신 보급 프로젝트와 관련해 한국과의 협업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며, 구체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대감을 높였다.이날 오전 게이츠 이사장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을 방문해 이재명 대통령을 접견했다. 그는 한국의 백신, 진단기기, 솔루션 분야 기술을 높이 평가하며 “앞으로 20년 안에 전 세계 아동 사망자 수를 연간 200만명 이하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은 이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한국의 혁신적인 바이오 제품들이 경이로운 수준이며, 이를 통해 전 세계적 공공 보건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백신연구소(IVI)와 함께 에스디바이오센서, SK, LG, 유바이오로직스 등 구체적인 국내 기업들을 직접 거론하며 성과를 칭찬하기도 했다. 특히 코로나19 백신과 진단기기의 성과를 언급하며 “저는 이 기업들의 제품을 직접 접할 기회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인류 전체를 위한 공공 활동에 경의를 표한다”며 “대한민국 정부도 협력할 방안을 최대한 모색하겠다”고 화답했다.오찬 자리에서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회동이 이어졌다. 양측은 글로벌 보건 협력 확대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으며, 김 총리는 오는 가을 한국에서 열릴 세계 바이오 서밋 행사에 게이츠 이사장의 참석을 요청했다. 또한 게이츠재단 한국사무소 개소를 통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협력 채널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게이츠 이사장 역시 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일정에서는 국회를 방문해 우원식 국회의장과 회담했다. 게이츠 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수준을 국내총생산(GDP)의 0.7%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며 국회의 협조를 요청했다. 그는 “글로벌 보건 개선을 위해서는 한국 같은 국가의 적극적인 재정적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우 의장은 이에 대해 “대한민국 역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며 “국회도 초당적으로 ODA 확대를 지지하며 보건 협력을 위한 정책적 뒷받침을 이어가겠다”고 답했다. 게이츠 이사장은 같은 날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도 이 같은 메시지를 거듭 강조하며, 한국이 글로벌 보건 향상을 위한 예산 배정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재차 당부했다.그는 또 최근 재단이 진행 중인 아프리카 언어 기반 AI 파일럿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현지 주민들과 인공지능이 대화하며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개선하는 데 활용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신약 개발과 보급 과정에서도 큰 혁신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AI 기술을 국제 보건 분야에 접목하는 것이 앞으로 재단의 주요 사업 축 중 하나임을 밝힌 것이다.이번 방한을 계기로 국내 바이오 업계와 게이츠재단 간 협력 논의도 활발히 진행됐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이날 재단과 단독 미팅을 열고 차세대 예방 의약품 개발 및 글로벌 보건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 트레버 먼델 게이츠재단 글로벌 헬스 부문 대표,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안재용 SK바이오사이언스 사장이 참석해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눴다. 또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라이트재단) 역시 같은 날 게이츠재단과 간담회를 갖고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간담회에는 바이오니아, 유바이오로직스, LG화학, 노을, 에스디바이오센서, SK바이오사이언스, 쿼드메디슨 등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7곳이 참여해 백신·치료제·진단기기 개발 현황을 공유하고 재단의 국제 보건 투자 방향과 접점을 찾았다.게이츠 이사장의 이번 행보는 한국의 기술력과 생산 능력을 세계 보건 증진에 적극 활용하려는 전략적 구상과 맞닿아 있다. 그는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재정적 기여 확대를 촉구하는 한편, 업계를 상대로는 실질적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 AI와 SMR 같은 미래 기술 분야까지 논의의 범위를 확장한 점도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방한이 단발적 만남에 그치지 않고 향후 구체적 프로젝트로 이어질 경우, 한국이 글로벌 보건과 에너지 혁신에서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