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모아

출범 전에 무너진 혁신위..안철수, 혁신위 대신 당대표 직행

 국민의힘이 출범을 예고한 혁신위원회가 첫걸음을 떼기도 전에 좌초 위기를 맞았다. 위원장직을 수락한 안철수 의원이 불과 닷새 만에 전격 사퇴를 선언하고 동시에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혁신위 구성 과정에서 친윤계와의 갈등이 불거졌고, 특히 인적 쇄신안 수용 여부를 두고 비상대책위원회와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는 7일 오전 국회에서 회의를 열고 안철수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위원회 인선안을 발표했다. 혁신위는 총 7인 체제로 계획됐고, 안 위원장을 중심으로 최형두 의원, 호준석 대변인, 이재성 여의도연구원 부원장, 송경택 서울시의원, 김효은 전 교육부 정책보좌관 등 6명이 위원으로 포함됐다. 한 자리는 공석으로 두고 빠른 시일 내 추가 임명을 예고했다. 당은 이번 인선이 안 위원장의 제안을 전폭 수용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불과 10분 후 안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위원장직 사퇴를 공식화했다. 그는 “당을 위한 절박한 마음으로 혁신위원장 제안을 수락했지만, 문을 열기도 전에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고 밝혔다.

 

 

 

안 의원이 언급한 ‘벽’은 친윤계를 중심으로 한 인적 청산 거부였다. 그는 최소한의 인적 쇄신 조치를 위해 비대위와 수차례 협의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혁신을 하려면 최소한 두 사람은 교체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주말 내내 협의한 끝에 비대위가 이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며 사퇴 배경을 설명했다. 안 의원은 구체적인 인물은 밝히지 않았으나, 대선 당시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던 이들이라고 밝혀, ‘쌍권’으로 불리는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는 이들에 대해 탈당 수준의 조치를 요청했으나 송언석 비대위원장이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혁신위원 인선 발표에 대해서도 안 의원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안이며, 최소한 한 명에 대해서는 전혀 합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처음 위원장을 맡을 당시 당에서 전권을 부여받았다고 믿었지만, 송 비대위원장과의 논의 과정에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결국 안 의원은 “비대위가 혁신안을 통과시킬 의지가 없다면 제가 이 자리를 맡을 이유가 없다”며 사퇴를 결정했고, “혁신 당 대표가 되어 직접 쇄신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 완전히 절연하고, 비상식과 불공정의 시대를 끝내겠다”고 강조했다.

 

안 의원의 이 같은 전격 행보에 당내 반응은 엇갈렸다. 송언석 비대위원장은 “당혹스럽고 아쉽다”며 짧게 입장을 전했지만, 인적 쇄신 수용 여부에 대해선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김대식 비대위원은 “혁신위원장 수락 닷새 만에 사퇴와 당 대표 출마는 혁신의 진정성을 무색하게 한다”며 “혁신의 길을 끝까지 완주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박정훈 의원은 “친윤이 키를 쥔 혁신은 눈속임이며, 안 의원 역시 쇼에 불과하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반면 양향자 전 공동선대위원장은 “형식은 자진사퇴지만 사실상 해임”이라며 “친윤 중심의 당 주류가 얼마나 혁신을 거부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로 인해 국민의힘의 혁신위원회는 첫발을 떼기도 전에 사실상 무력화됐고, 안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 선언은 계파 갈등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당의 쇄신을 둘러싼 명분 경쟁이 본격화되며, 친윤계와 비윤계 간의 권력 투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안철수 의원이 직접 혁신의 기치를 들고 당 대표에 도전하면서, 향후 국민의힘의 방향성과 당내 역학구도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아수라장이 된 부울경 연설회..‘배신자’ 고함 난무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전한길 씨 논란 이후 좀처럼 진정되지 않으며 내홍이 계속되고 있다. 12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울산·경남권 합동연설회는 시작부터 극도의 긴장과 대립 속에서 진행됐다. 행사장에는 ‘탄핵 반대파(반탄)’ 지지자들과 ‘탄핵 찬성파(찬탄)’ 후보들이 한 공간에 모였지만, 분위기는 전혀 화합적이지 않았다. 사회자는 이례적으로 개회 전 “행사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사람은 퇴장 조치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렸다. 이는 이전 지역 연설회에서 발생한 소란 사태를 의식한 조치였다. 모든 후보들은 ‘경쟁 후보 비방과 모함을 하지 않겠다’는 공정경쟁 준수 서약에 서명하며 단상에 올랐지만, 장내 공기는 차갑고 불안정했다.전날까지도 논란의 중심이었던 전한길 씨는 지난 8일 대구·경북권 합동연설회에서의 소란 이후 당 지도부의 결정으로 행사장 출입이 금지됐다. 그러나 전 씨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일부 강성 당원들은 그의 목소리를 대변하듯 거친 구호와 야유를 쏟아냈다.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 연단에 오르는 순간, 여기저기서 항의와 고성이 터져 나왔다. 잠시 멈칫한 송 위원장은 “부울경 당원들이 활기와 열정이 넘친다”고 웃어 넘기려 했지만, 계속되는 항의에 “여러분이 분노를 터뜨려야 할 대상은 이재명 정권”이라고 맞받았다.이날 연설회에서 반탄파 후보들은 장내 격앙된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특히 조경태 당 대표 후보는 전날 내란특검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국민의힘 지도부의 계엄 해제 방해 의혹과 관련한 진술을 한 뒤, 찬탄파로 분류돼 거센 비판을 받았다. 김문수 후보는 “내란특검에 동조해 당을 내란동조세력으로 몰아선 안 된다”며 “이재명 독재를 끝장내기 위해 미국 등 우방과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동혁 후보는 이재명 대통령을 “헌법기관인 사법부를 장악하고 검찰을 해체하는 소리 없는 계엄의 주체”라고 규정하며 “더불어민주당을 해산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한 이재명을 반드시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원 후보 역시 조 후보를 겨냥해 “대선이 끝나고도 내부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내란동조세력 운운하는 발언은 내부 총질”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신동욱 후보는 “특검 앞에 나가 동지의 등에 칼을 꽂는 자들이 있다”며 “이번 전당대회는 불순 세력을 척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범규·최수진 후보도 “내부 총질은 안 된다”는 입장을 반복하며 반탄파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박홍준 청년최고위원 후보는 “우리가 만든 대통령을 탄핵의 문으로 밀어넣은 세력이 당을 진흙탕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반면 찬탄파와 쇄신파 후보들은 당원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조경태 후보가 연단에 오르자 장내 곳곳에서 고성과 야유가 터져 나왔다. 조 후보는 손짓으로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처를 보냈으나 소동은 계속됐다. 사회자가 나서서 진정시키는 가운데 어렵게 연설을 시작한 그는 “국민과 당원을 배신한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라며, “탄핵 반대와 부정선거, 윤석열 재집권을 주장하는 세력을 반드시 몰아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훼방꾼을 청산하지 않으면 당의 미래는 없다”며 국민 눈높이에 맞는 강력한 인적 쇄신을 약속했다. 전한길 씨로부터 “배신자” 공격을 받았던 김근식 후보 역시 연설 전 장내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일부 당원들이 “배신자”라고 외치자 그는 “배신자라는 단어를 즐겨 쓰는 집단은 조폭”이라며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의리보다 중요한 건 국민과의 신뢰”라고 맞받았다. 안철수 후보는 전 씨를 겨냥해 “한 마리 미꾸라지가 난동을 부렸다”며 “계엄에 찬성하고 윤석열 재집권을 신봉하는 극단 세력에 기대 표를 구걸하는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보수정당의 근본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무대 밖에서도 갈등은 이어졌다. 김문수 후보는 조경태 후보의 발언을 “민주당보다 과격하다”고 평가했고, 조 후보는 “바른말이 왜 내부 총질이냐”고 반박했다. 입장이 제지된 전한길 씨는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열고 “조금 억울한 면도 있지만 지도부 결정을 대승적으로 수용한다”고 밝혔다. 그는 “좋은 지도부와 최고위원이 선출돼 무너진 당을 재건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회복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이번 부울경 합동연설회는 단순한 지역 유세를 넘어 국민의힘 내부의 뿌리 깊은 갈등과 진영 대립이 공개적으로 폭발한 장면이었다. 반탄파와 찬탄파 간의 극한 대립은 후보 연설마다 고성과 야유로 이어졌고, 일부 후보는 이를 지지 결집의 기회로 삼았으나, 쇄신파 후보들은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 채 방해를 받았다. 전당대회가 막판까지 이런 양상으로 이어질 경우, 당의 결속력 약화와 대외 신뢰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도부와 후보들이 이번 갈등을 어떻게 수습할지, 그리고 이러한 대립 속에서 어떤 지도부가 탄생할지가 당의 향후 정치적 향방을 좌우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