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모아

'장롱 속 6억' 김민석, 총리 인준 벼랑 끝 승부수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는 6월 26일 인사청문회를 마친 뒤 자신의 SNS를 통해 국민들에게 감사와 송구의 마음을 전하며, 총리직에 대한 각오를 밝혔다. 그는 “삶의 팍팍함 속에서도 공적 책임을 다해왔지만, 국민 여러분의 눈높이에 여전히 미흡하실 대목들에 송구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이재명 정부의 첫 총리 후보자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며 “민생 위기를 극복하고 위대한 대한민국 시대를 여는 참모장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서 오랜 기간 야인으로 지낸 점도 강조했다. 그는 “18년 야인생활 동안 하늘과 국민이 가장 두렵고 감사함을 온몸으로 배웠다”며 “인준이 된다면 국민과 하늘을 판단의 기둥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인사청문회는 정상적으로 마무리되지 못했다. 둘째 날인 25일 오후부터 국민의힘 청문위원들이 회의장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청문회는 자정에 자동으로 산회됐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자료 제공을 문제 삼으셨지만, 요청하신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이미 말씀드린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청문회 파행의 중심에는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이 제기한 '6억 장롱 현금' 보유 의혹이 있었다. 김 후보자는 이를 두고 “결국 주진우 의원께서 제기한 ‘6억 장롱 현금’ 주장의 허위를 사과하는 것이 야당에 부담이 된 듯하다”며 “아쉽다”고 말했다. 이 의혹은 김 후보자의 배우자가 수년 전 보유했던 6억원 현금을 금융계좌 대신 장롱에 보관했다는 주장으로, 여당은 근거 없는 정치공세라고 반박했다.

 

 

 

청문회 중단 이후 여야의 대립은 더 뚜렷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청문회 보이콧을 ‘정치적 흠집내기’로 규정하며 김 후보자에 대한 방어에 나섰고, 국민의힘은 자료 미제출과 도덕성 논란을 이유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여야 간 입장차는 결국 청문회 파행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고, 추가적인 질의나 검증 없이 회의는 종료됐다. 국무총리 인사청문회가 공식적인 절차를 다 밟지 못한 채 사실상 마무리된 것이다. 이에 따라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은 국회 본회의 표결로 넘겨졌으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단독으로 인준을 밀어붙일 방침이다.

 

김 후보자는 현재 국회의원 신분으로 국회에 머무르고 있으며, “국회 인준까지 남은 시간 차분히 기다리며 일할 준비를 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에서 제2의 IMF 위기 대응을 위한 추경 편성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진행할 예정으로, 김 후보자는 이에 대한 국회의 협조와 국민의 응원을 당부했다. 그는 “오늘 대통령님께서 국회 시정연설을 하신다. 민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추경 편성안 설명이다. 국회의 협조와 국민 여러분의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번 추경은 경기침체와 물가상승 등 복합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조치로, 정부와 여당은 이를 속도감 있게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늦어도 6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7월 4일 전까지 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표결에 부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르면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시한인 29일 하루 뒤인 30일 본회의에서 단독으로 인준안을 처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 후보자가 인준을 통과하게 되면 이재명 정부의 첫 국무총리로서 공식 임기를 시작하게 되며, 윤석열 정부 시절 지명된 한덕수 전 총리 이후 약 2년 만에 총리 교체가 이뤄지게 된다.

 

김 후보자는 이번 인사청문회를 통해 도덕성과 전문성, 위기관리 능력 등 총리직에 필요한 자질을 설명하고자 했으나, 야당의 불참으로 인한 검증 불발이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남은 과제는 결국 국회 본회의에서의 인준 여부이며, 여야 간 정면충돌 속에 김민석 후보자의 거취는 정치적 판단과 표 대결로 결정될 전망이다.

 

"강간범은 집유 6개월, 저항한 피해자는 10개월?" 61년 전 뒤바뀐 정의가 바로 잡히다

 부산지법 352호 법정에서 23일 오전, 이례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부산지검 정명원 공판부 부장검사가 피고인석에 앉은 79세 노인에게 고개를 숙이며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을 최말자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깊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이 노인은 61년 전인 1964년, 18세 나이에 성폭행을 시도하는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저항했다가 오히려 '가해자'로 몰려 중상해 혐의로 기소됐던 최말자씨다. 당시 검찰은 그녀의 정당방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영장 제시도 없이 구속했다. 1965년 1월, 최씨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반면 성폭행을 시도했던 노모(당시 21세)씨는 강간미수 혐의는 다뤄지지 않고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만으로 재판을 받아 최씨보다 가벼운 징역 6개월의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성폭행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더 무거운 형을 받는 부조리한 결과였다.56년이 지난 2020년, 최씨는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의 도움을 받아 용기를 내 재심을 청구했다. 오랜 법적 다툼 끝에 지난해 재심 절차가 시작됐고, 이날 첫 공판이 열렸다.공판부장이 직접 법정에 서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더욱이 정 부장검사는 피고인을 '최말자님'이라고 존칭하며 검찰의 과오를 인정했다. 그는 "재심 개시 결정의 취지에 따라 검찰은 사실관계부터 법률 판단에 이르기까지 치우침 없이 재검토했다"고 밝히며, 5분가량의 짧은 발언 후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조용하던 법정은 순식간에 흐느끼는 울음소리와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무죄를 구형한 정 부장검사는 경북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35기로 2006년 검사 생활을 시작했으며, 지난해 공판분야 최초로 공인전문검사 1급인 '블랙벨트'에 선정된 바 있다.이날 최씨는 법정을 나서면서 홀가분한 표정으로 손을 치켜들며 "이겼습니다"를 세 번 외쳤다. 법정 밖에서는 그동안 최씨를 지지해온 연대자들과 포옹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됐다.한국여성의전화는 검찰의 무죄 구형에 대해 "61년 만의 검찰의 사과는 너무 늦었고 당연하다"며 "지금이라도 당시 부정의를 바로 잡고자 하는 검찰의 구형은 최말자 님 뿐 아니라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이번 사건은 단순한 한 개인의 억울함을 넘어, 한국 사회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인식과 사법 시스템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61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후에야 이루어진 검찰의 사과와 무죄 구형은 늦었지만, 정의가 실현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