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국 폭격 후 이란, ‘친구’ 러시아로…푸틴의 미묘한 신중함

 미국의 B-2 스텔스 폭격기가 이란 핵시설 세 곳을 정밀 타격한 직후, 이란 외무장관이 급히 러시아로 향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 간의 회동이 예정된 가운데, 러시아가 이란을 ‘전략적 파트너’로서 실제로 어떻게 도울지에 대해 국제 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아락치 외무장관은 전날 러시아를 “이란의 친구”라고 칭하며 러시아 방문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현지 관영 누르통신에 따르면, 아락치 장관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실시한 이란 영토 내 공습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지도부 및 고위 관계자들과 긴급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다만 러시아 외무부는 구체적 사안에 대해선 “일련의 회담이 있을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내놓았다.

 

지난 1월, 이란과 러시아는 포괄적 전략 파트너십 협정을 체결했지만, 군사 협력에 관한 조항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대통령 역시 최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습 사태가 벌어진 지 5일째 되는 날 “이란에 무기를 제공할 준비가 되었느냐”는 질문에 “협정에 군사 협력이 포함돼 있지 않으며, 이란이 지원을 요청한 적도 없다”고 재차 확인했다. 실제로 이란도 이스라엘과의 교전 10일 동안 러시아에 군사 개입을 정식으로 요청하지 않은 상태다.

 

국제 문제 전문가 니키타 스마긴은 유로뉴스 인터뷰에서 “이란은 외세 개입을 거부하는 국가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있다. 군사 지원 요청은 주권 침해로 비칠 수 있어 매우 조심스러운 사안”이라며 “러시아 역시 미국과 이스라엘과의 긴장을 악화시키는 위험을 감수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이번 공습에 대해 러시아는 말뿐인 비판만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의 군사 개입을 강력히 규탄하며 “핵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적 노력을 약화시켰다”고 주장했으나, 이란에 대한 실질적인 군사 지원 조치나 구체적 행동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의 신중한 대응은 현재 러시아가 4년째 지속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과 제한된 국가 자원, 그리고 지정학적 우선순위의 복잡한 균형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중동에서 이란의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등과도 우호 관계를 유지하며 균형외교를 시도하고 있다. 이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유가 조율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현재 이란 의회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결의하며 중동 불안정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편, 국제유가 상승은 러시아 경제에 일정 부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선을 배럴당 60달러에서 45달러로 낮추려 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당분간 기존 가격이 유지되는 상황이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유지에도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중재국 역할을 해온 미국이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난항을 겪자, 뉴욕타임스는 “푸틴이 중동 위기를 외교적 카드로 활용해 트럼프에게 정치적 ‘빚’을 지우려 한다”고 분석했다.

 

군사 기술 면에서 러시아는 이미 독자적 체계를 갖추고 있어 이란에 대한 군사적 의존도가 크지 않은 상태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이란의 무인기 ‘샤헤드-136’의 러시아 버전인 ‘게란’ 시리즈는 사실상 러시아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이란의 기술 의존도는 거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러시아 전략 및 기술 분석 전문가 루슬란 푸코프는 “이란산 드론은 소음이 커서 성능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혹평했다.

 

그럼에도 러시아 내부에선 ‘이란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며 “평화중재자를 자처했으나 미국을 또 다른 전쟁으로 끌어들였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재벌 콘스탄틴 말로페예프도 텔레그램에 “위성 정보, 방공, 미사일 분야에서 이란을 지원해야 할 때”라는 글을 올리며 이란에 대한 군사 지원 필요성을 제기했다.

 

결국 러시아는 이란과의 관계에서 군사 지원보다는 외교적 균형과 지정학적 이익을 우선시하면서도 내부에선 이란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교차하는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의 B-2 폭격기 공습 이후 급박하게 움직인 이란 외무장관의 러시아 방문과 푸틴 대통령과의 회동은 앞으로 중동 정세와 미·러·이란 관계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감독관도 몰랐다? '총체적 인재' 인천 맨홀 비극, 누구의 책임인가!

 인천 계양구에서 발생한 맨홀 작업 중 사망 및 의식불명 사고가 보호구 미착용, 유독가스 측정 미비, 그리고 불법적인 재하도급 등 총체적인 '인재(人災)'로 밝혀지며 충격을 주고 있다. 노동 당국과 경찰은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광범위한 수사에 착수했다.지난 6일 오전 9시 22분경 계양구 병방동 도로 맨홀 안에서 작업 중 쓰러져 실종됐던 A(52)씨는 다음 날 오전 10시 49분경 약 900m 떨어진 부천시 굴포천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끝내 숨졌다. 대구에서 이번 작업을 위해 출장 왔던 A씨는 비극적인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A씨를 구조하기 위해 맨홀 안으로 들어갔다가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B(48)씨는 현재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찾지 못하고 사투를 벌이고 있다. 호흡과 맥박은 돌아왔지만 여전히 위중한 상태다.이번 사고는 복잡한 하도급 구조 속에서 안전 관리의 사각지대가 발생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부고용노동청 조사 결과, 인천환경공단이 발주한 '차집관로 지리정보시스템(GIS) 데이터베이스 구축 용역'은 원청인 C사가 D사와 하도급 계약을 맺었고, D사는 다시 B씨가 대표로 있는 오폐수 관로 조사 업체 E사와 재하도급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파악됐다. 숨진 A씨는 D사 소속이 아닌 다른 업체 소속으로 확인돼, A씨와 A씨 소속 업체가 D사와 재하도급 계약을 맺었는지 여부도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중부고용청은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업체에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중점적으로 수사하고 있다.사고 당시 안전 수칙은 철저히 무시됐다. 소방 당국 조사에 따르면, A씨 등은 작업 당시 산소 마스크 등 필수 보호구를 전혀 착용하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다른 작업자들 역시 이들이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으며, 밀폐공간 작업 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산소 및 유독가스 농도 측정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맨홀 안에서는 황화수소와 일산화탄소 등 유독가스가 다량 측정된 것으로 확인돼, 이들이 가스에 질식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더 큰 문제는 발주처인 인천환경공단 소속 감독관이 작업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밀폐공간 작업은 감독관 입회가 필수임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작업 보고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현장에 감독관이 없었다. 인천환경공단은 불법적인 재하도급 사실 또한 몰랐다는 입장이다. 공단 측은 "용역 과업지시서상 발주처 동의 없는 하도급은 금지돼 있다"며 계약 위반으로 용역 중단까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경찰은 A씨의 정확한 사망 원인 규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할 예정이다. 또한, 발주처인 인천환경공단과 원청 및 하도급 업체들을 대상으로 현장 안전관리 주체를 명확히 파악하고,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하는 등 강도 높은 합동 조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이번 사고는 안전 불감증과 불법 하도급 관행이 결합될 때 얼마나 참혹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