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동결 vs 14.7% 인상'? 내년 최저임금 줄다리기 본격화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에도 업종 구분 없이 단일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6차 전원회의에서 업종별 차등 적용 여부를 놓고 표결이 진행됐으며,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27명 중 반대 15표, 찬성 11표, 무효 1표로 업종별 구분 적용안이 부결됐다.

 

이번 표결은 경영계와 노동계 간 첨예한 대립 속에서 이루어졌다. 경영계는 코로나19 이후 경기 침체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음식·숙박업 등 취약 업종에 한해 최저임금을 낮게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사용자 측 운영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산업현장의 최저임금 수용성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며 일부 업종부터라도 구분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노동계는 "업종별 구분 적용은 최저임금제도 본래 취지에 반하는 차별"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이 모든 근로자의 최소한의 생활 보장을 위한 제도라는 점을 들어, 업종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것은 근로자 간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법 제4조는 사업 종류별로 구분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업종별 차등 적용이 이루어진 것은 1988년이 유일하다. 1989년부터는 지금까지 36년간 단일 최저임금 체제가 유지되어 왔다. 이번 표결 결과로 내년에도 이 전통은 계속 이어지게 됐다.

 

업종별 구분 적용 논의가 일단락되면서, 최저임금위원회는 이제 내년 최저임금 수준 논의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경영계와 노동계는 내년 최저임금 수준을 두고 큰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경영계는 경기 침체와 고용 부담 등을 이유로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와 같은 시급 1만30원으로 동결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2024년 최저임금이 전년 대비 2.5% 인상된 것을 감안할 때,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더라도 실질적인 임금 감소를 의미할 수 있는 제안이다.

 

반면 노동계는 14.7% 인상한 시급 1만1,500원, 월급 240만3,500원을 최초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노동계는 최근의 물가상승과 주거비 부담 증가 등을 고려할 때 대폭적인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양측 요구안의 차이는 1,470원으로, 이는 현행 최저임금의 약 14.7%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오는 26일 예정된 제7차 전원회의부터 본격적인 격차 조정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법정 결정기한인 8월 5일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을 확정해야 하며, 이후 고용노동부 장관의 고시를 거쳐 내년 1월 1일부터 새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최저임금 이게 다냐” 노동계 폭발..최저임금 인상률에 격노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최저임금 심의가 졸속으로 마무리된다면 정치적 책임은 이재명 정부가 온전히 지게 될 것”이라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두 노총은 정부가 ‘노동존중’을 공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최저임금 인상률을 용인했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8일 제시한 2026년도 적용 최저임금 심의촉진구간으로 시간당 1만210원에서 1만440원을 제안한 바 있다. 이는 인상률 기준 1.8%에서 4.1%에 해당하며, 현재 시급(1만 원) 기준 최저임금 인상폭이 240원에 그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최근 5개 정부 가운데 가장 낮은 첫 해 인상률이다. 앞서 노무현 정부는 첫 해 10.3%, 이명박 정부는 6.1%, 박근혜 정부는 7.2%, 문재인 정부는 16.4%, 윤석열 정부는 5.0% 인상률을 기록한 바 있다.양대노총은 이런 제안에 대해 “저임금 노동자의 생존권을 무시한 처사”라고 맹비난했다. 이들은 “물가 상승률조차 반영하지 않은 이번 심의촉진구간은 사실상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삭감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또 노동계가 제시한 월 생계비 264만원은 사치가 아니라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준이라며, 공익위원들의 이번 제안에는 이러한 절박한 현실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과 새 정부를 향한 공격이 날카로웠다. 노동계는 이재명 정부가 ‘반노동’으로 평가받은 윤석열 정부보다도 낮은 인상률을 묵인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민주노총 이미선 부위원장은 “공익위원들이 터무니없는 수치를 제시했을 때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그 침묵은 곧 묵인”이라며 “이 심의가 그대로 마무리된다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위원장은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한 공익위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기계적 중립 뒤에 숨지 말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 역시 “내란정권의 첫 해 인상률보다도 낮은 수치를 제시한 것은 새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며 “노동 존중과 양극화 해소, 산재 감소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그 출발은 최저임금 인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 사무총장은 이재명 정부와 한국노총 간의 정책 협약 관계를 언급하며, “결승선에서 함께 손잡고 들어가는 파트너십을 기대했지만 이대로라면 신뢰가 깨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한편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12차 전원회의를 열고 최종 최저임금액을 결정할 예정이다.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상한선인 시급 1만440원으로 결정될 경우 인상률은 4.1%로 마무리된다. 노동계는 이 같은 결과가 현실화될 경우 추가적인 대정부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이번 사안은 단순한 최저임금 수준을 넘어, 이재명 정부의 ‘노동존중’ 공약 실천 여부와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향후 정국의 새로운 갈등 요인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계는 이번 결정이 정부의 노동정책 진정성을 가늠할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마지막까지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