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모아

사법개혁은 설 이후로! 민주당 '민생 법안' 우선 처리

 여야의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던 국회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2월 국회에서 쟁점 법안보다는 국민 생활과 직결된 비쟁점 민생 법안을 우선 처리하는 방안을 전격 검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국회의 입법 지연을 강하게 질타한 상황을 의식한 행보이자, 필리버스터를 예고하며 거세게 저항하는 국민의힘과의 파국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이르면 오는 5일 본회의를 열어 산업스파이 대응을 위한 간첩법 개정안을 포함해 여야 간 이견이 적은 80여 건의 비쟁점 법안을 우선 처리할 계획이다. 당초 정청래 대표는 법왜곡죄 신설이나 재판소원법 도입 등 사법개혁 법안을 설 연휴 이전에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자칫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다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에 막혀 민생 법안까지 줄줄이 폐기되거나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국회가 너무 느려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라며 행정부의 발목을 잡는 입법부의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질타가 민심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민주당이 '일하는 국회' 이미지를 선점하기 위해 속도 조절에 나선 셈이다. 이에 따라 사법개혁 법안과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법 등 휘발성이 강한 검찰개혁 관련 법안들의 처리는 설 연휴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국민의힘 역시 복잡한 셈법에 들어갔다. 일단 민주당의 개혁 법안들을 '사법 파괴 악법'으로 규정하고 전면적인 필리버스터 전략을 세워둔 상태다. 하지만 모든 법안에 대해 무제한 토론을 이어갈 경우, 자칫 민생을 외면한다는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는 점이 고민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민주당이 쟁점 법안 처리를 위한 명분 쌓기로 비쟁점 법안을 이용하는 것이라면 협조하기 어렵다면서도, 민생 법안까지 필리버스터로 막는 것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고 전했다. 이미 지난달 말 90여 건의 비쟁점 법안 처리에 협조했던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도 극적인 합의가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하지만 민생이라는 이름 아래서도 여야가 날카롭게 부딪히는 지점이 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인상 압박과 맞물린 대미투자특별법이다. 미국 측이 한국의 입법 지연을 빌미로 관세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자, 민주당은 2월 국회 내 처리를 목표로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 법안을 재정경제위원회에서 신속히 논의해야 한다고 압박하며, 미국의 행정명령에 대응하기 위한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며 맞서고 있다. 35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이 따르는 한미 관세 합의 양해각서(MOU)에 대해 국회의 사전 및 사후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리다. 정부와 여당이 특별법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건너뛰려 한다고 비판하며 비준 동의안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미국은 행정명령으로 가볍게 움직이는데 우리만 국회 비준으로 묶어버리면 한국에만 일방적인 구속력이 생겨 국익을 해치는 자해 행위가 될 것이라고 강력히 반박하고 있다.

 

결국 2월 국회는 설 연휴를 기점으로 전반전과 후반전이 극명하게 나뉠 전망이다. 설 전에는 비쟁점 법안 처리를 통해 민심을 살피는 '휴전' 모드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연휴가 끝난 뒤에는 사법개혁 법안과 대미투자특별법 비준 문제를 놓고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창과 방패의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대정부질문 기간 동안 터져 나올 관세 협상 논란과 검찰 개혁 공방은 향후 정국의 향방을 결정지을 최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은 정치권의 싸움보다는 당장 내 삶에 도움이 되는 법안들이 언제 통과될지에 주목하고 있다. 여야가 '민생 우선'이라는 구호에 걸맞게 실질적인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 아니면 또다시 정쟁의 늪에 빠져 소중한 시간을 허비할지 지켜볼 일이다. 5일 열릴 본회의가 이번 2월 국회의 성격과 여야 협치의 가능성을 가늠할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나경원 '헌정 파괴' 항의, 김용민 '尹과 단절하라' 맞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특정인을 겨냥한 사면 금지법을 두고 여야가 정면으로 맞붙었다. 20일 열린 법안심사소위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내란죄로 수감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국민의힘은 위헌적 발상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법안은 최근 정치권의 가장 뜨거운 뇌관으로 떠올랐으며,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지속된 여야 대치의 연장선에 있다.더불어민주당은 내란죄와 같이 헌정 질서를 유린한 중대 범죄는 어떤 명분으로도 사면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소위원장인 김용민 의원은 1심 재판부가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초범, 고령 등을 감경 사유로 든 것은 납득하기 힘든 오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사법개혁 3법 통과에 이어, 민주주의를 파괴한 범죄에 면죄부를 주지 않기 위해 사면금지법 처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국민의힘은 이러한 시도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나경원 의원은 사면법은 사면의 종류와 절차를 규정할 뿐, 대상을 제한하는 것은 삼권분립을 해체하는 헌법 파괴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한 최근 민주당의 움직임을 '미친 짓'이라고 표현한 유시민 작가의 발언을 인용하며, 사면법 강행 처리야말로 헌정사의 비극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양측의 공방은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졌다. 김용민 의원이 법원의 내란 판결을 근거로 "국민의힘 정당 해산의 토대가 마련됐다"며 "윤석열과 하루빨리 단절하라"고 압박하자, 나경원 의원은 거세게 항의하며 회의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이날 소위원회에서는 사면법뿐만 아니라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도 함께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 역시 기업의 경영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의힘과 경영계가 반대하고 있어 또 다른 충돌 지점으로 남아있다. 여야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오전 공개 회의는 시작된 지 12분 만에 비공개로 전환되었으며, 여야 간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정회했다. 민주당은 오후에 회의를 속개해 상법 개정안 논의를 마치는 대로 사면법 처리를 시도할 계획임을 분명히 해, 오후 회의에서도 극심한 진통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