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모아

전체 인구 19%, 진료비는 45% 꿀꺽…노인 진료비 50조 돌파 '빨간불'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사용한 건강보험 진료비가 사상 처음으로 50조 원을 돌파하며, 전체 진료비의 절반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노년층의 의료비 부담이 건강보험 재정 전체를 뒤흔드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지표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 116조 2375억 원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 971만 명의 진료비는 52조 1935억 원에 달했다. 전체 인구의 18.9%에 불과한 노인 인구가 전체 진료비의 44.9%를 사용한 셈이다. 불과 4년 전인 2020년 37조 원대였던 노인 진료비가 38.8%나 폭증하며 건강보험 재정에 거대한 경고등이 켜졌다.

 

이러한 진료비 급증은 개개인의 부담으로 직결되고 있다. 지난해 노인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550만 8천 원으로, 전체 인구 1인당 평균 진료비인 226만 1천 원의 2.4배에 달했다. 나이가 들수록 의료 서비스 이용이 급격히 늘어나는 인구 구조의 변화가 전체 의료비 상승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보험료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지난해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는 총 84조 1248억 원으로, 가구당 월평균 13만 4124원을 부담했다. 1인당 연간 163만 원의 보험료를 내고 187만 원의 급여 혜택을 받은 셈이지만, 특정 연령층에 의료비가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될수록 미래 세대의 보험료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의료 수요는 폭증하고 있지만, 정작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공급 시스템은 곳곳에서 균열을 보이고 있다. 전체 의료기관 수는 10만 3308곳으로 소폭 증가했으나, 인력 구조의 불균형은 심각한 수준이다. 간호사, 한의사, 약사 등 대부분의 의료 직역 종사자 수가 늘어난 반면, 의료의 핵심인 의사 수는 오히려 직전 해 대비 4.7%나 감소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인력 불균형은 분만 인프라 붕괴라는 현실로도 이어졌다. 지난해 전체 분만 건수는 제왕절개 수술이 늘어난 영향으로 2.8% 증가했지만, 정작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분만 의료기관은 전국적으로 4.9%나 줄어들었다. 아이를 낳을 곳은 점점 사라지고, 환자를 진료할 의사는 줄어드는 의료 시스템의 역설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진료비 급증의 배경에는 만성질환의 보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만성질환으로 진료받은 인원은 무려 2294만 명에 달했으며, 고혈압(762만 명), 관절질환(744만 명), 정신 및 행동장애(432만 명)가 가장 많은 환자 수를 기록했다. 여기에 암(150만 명), 희귀난치성질환(110만 명) 등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중증질환자 역시 282만 명에 이르렀다. 고령화와 함께 만성질환 유병률이 높아지면서 전체 의료비 파이를 키우고, 이는 다시 건강보험 재정을 압박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폭발하는 의료 수요와 삐걱거리는 공급 시스템, 그리고 특정 세대에 집중되는 비용 부담이라는 삼중고는 대한민국 건강보험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4세·7세 고시' 금지법 국회 교육위 통과

 극심한 경쟁을 유발하며 영유아 사교육 광풍의 상징으로 불려온 ‘4세·7세 고시’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이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8일 국회 교육위는 유아들의 영어학원 입학시험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학원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며,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조기 사교육 열풍에 제동을 걸었다.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유아 선발 시험 금지에 있다. 구체적으로는 만 3세부터 초등학교 취학 전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학원, 교습소, 개인과외에서 합격 또는 불합격을 결정하는 일체의 선발 시험을 금지하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이 조치는 어린 유아들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와 조기 경쟁을 강요하는 극단적인 사교육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되었다. 다만, 법안 원안에는 입학 후 수준별 배정을 위한 시험 또는 평가까지도 금지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소위를 통과한 수정안에서는 이 부분이 제외됐다. 이에 따라 학원 측은 유아 선발을 위한 시험은 볼 수 없지만, 입학 후 원생들의 수준에 맞는 반 배정을 위한 레벨 테스트 자체는 여전히 시행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이른바 '4세 고시'로 대변되는 영유아 사교육 시장의 과열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사교육을 시작하는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면서, 입시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일부 영어학원에서는 7세 반 교재로 미국 초등학교 3~4학년 교과서를 사용하는 등 교육 경쟁의 시작점이 초등학교 입학 이전으로 당겨지는 현상이 심화됐다.이러한 사교육 쏠림 현상은 통계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9년 전국 영어유치원(영유)은 615곳이었으나 2023년 842곳으로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일반 유치원은 8837곳에서 8441곳으로 감소했다. 어린이집을 졸업하는 3~4세부터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보내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맘카페 등에서는 대치동 유명 학원의 레벨 테스트 대비용 문제집 정보가 공유되는 등 경쟁이 극에 달했다.한국의 영유아 사교육 시장은 외국 학자들마저 경악하게 만들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의 학문적 경쟁이 6세 미만의 절반을 입시 학원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보도하며, '사교육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조명한 바 있다. 특히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는 EBS 인터뷰에서 한국의 합계 출산율(0.78명)을 듣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며 머리를 부여잡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영유아 사교육 광풍이 양육 부담을 가중시켜 세계 최악의 저출산 문제를 부추기는 악순환의 고리 중 하나라고 분석하고 있다.이번 법안 통과는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과도한 선행 학습 경쟁을 완화하고, 교육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